매미가 땅으로 내려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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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8.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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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의 칼럼〕
 
여름이 깊어지면 나무마다 매미 소리 가득하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미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등가죽이 찢어지게 울어댄다.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매미는 처음부터 나무 위에서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세상 저렇게 악을 쓰며 우는 족속이 없기 때문이다.
 
매미는 긴 세월을 땅속에서 지낸다. 어둠 속에서 흙과 나무뿌리에 의지하며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땅 위로 올라온다. 허물을 벗고 나무에 오른다. 땅속의 긴 기다림에 비하면 나무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다. 짧은 시간을 매미는 온 힘을 다해 살아간다.
 
상상해본다. 나무 위 매미가 땅으로 내려온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힘들게 올라간 나무를 왜 내려오는가. 더 높은 가지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매미가 내려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다. 젊을 때는 누구나 올라가려고 한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린다. 세월이 흘러 인생의 황혼에 이르면 생각이 달라진다.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공부인지도 모른다.
 
매미에게 나무는 세상과 만나는 곳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울음으로 짝을 찾는다. 나무 위에 올라선 매미는 마치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가지에 올라가도 결국 내려와야 할 시간이 온다. 그때 땅은 매미를 받아준다. 올라가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만 내려오는 데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스스로 내려온다는 것은 자신이 이루어온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를 뜻한다.
 
내려온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욕심을 줄이고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일이다.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녀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믿어주고, 후배에게 기회를 건네는 것도 내려놓음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덜어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그렇다. 평생 쌓아온 명예와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 사람 사이의 벽도 낮아진다.
 
노년의 삶에서는 내려오는 지혜가 중요하다. 젊은 날에는 시간을 아끼느라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하면서도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일, 따뜻한 밥 한 끼를 가족과 나누는 일이 모두 감사한 일이 된다. 높은 곳에서 얻은 박수보다 낮은 자리에서 나누는 말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매미가 땅으로 내려온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인간 역시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내려오는 사람에게는 빈손의 자유가 있다. 움켜쥔 손으로는 새로운 것을 받을 수 없지만, 펼친 손에는 햇빛도 바람도 사람의 마음도 머문다. 자연에는 영원히 올라가기만 하는 생명은 없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듯 모든 생명에는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가 있다. 내려오는 것은 때를 알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지혜다.
 
우리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젊을 때는 올라가야 하지만, 인생 황혼에는 뒤를 돌아보며 걸어온 길을 살펴야 한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누구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렸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직함도 재산도 명예도 아니다. 함께 웃었던 사람들의 얼굴과 누군가에게 건넸던 따뜻한 말, 사랑했던 기억이다.
 
내려간다고 해서 삶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욕망에서 벗어나고, 경쟁에서 풀려나고, 남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평온을 가진다. 높은 곳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사람이 낮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인생은 새로운 깊이를 얻는다.
 
매미는 때가 되면 땅으로 돌아간다. 인간도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내려왔느냐이다. 젊은 날의 오름이 삶의 열정이었다면, 황혼의 내려옴은 삶의 지혜다. 올라갈 때는 박수를 받지만, 내려올 때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더 가지려 하기보다 나누고, 더 높아지려 하기보다 겸손하며, 더 오래 붙잡기보다 아름답게 보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 마지막에 우리가 배워야 할 살아있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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